불 꺼진 거실에 그는 홀로 앉아있었다. 볼륨이 낮춰진 TV에서는 오늘 낮에 있었던 댈러스와의 경기가 재방송되고 있었다. TV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으로 인해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음영이 쉴 새없이 바뀌었다.
“앨런.”
“…….”
“혼자서 이러고 있는 거예요? 처량맞게.”
“…….”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앨런의 시선은 여전히 TV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3쿼터.
2점차로 거의 추격했을 무렵 제이슨 테리의 3점슛. 그리고 5점차, 7점차, 10점차… 점점 벌어진다. 그게 오늘 그들의 모습.
그러나 오늘만의 모습이 아니다. 앨런이 단장에게 트레이드를 요청한 이후로 경기에 불참하면서 그래왔고, 그 이전에 올 시즌 5승 이후 9연패를 하면서 그들의 모습은 매 경기 그래왔다. 무기력하고, 뭔가 부족한.
“새미.”
“말해요. 다 말 해봐요.”
“우린… 뭐가 문제인걸까.”
“…형.”
새뮤얼은 소파로 다가와 앨런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앉았다. 시선은 TV에 고정한 채 텅 빈 눈을 한 앨런이 새뮤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머리…”
“형도 없는데 콘로우 누가 해 줘요. 그냥 놔뒀더니 지저분해서 깎았어요.”
“…….”
“라커룸까지 비우고… 계속 그럴 거예요. 단장님도 서운해 하세요. 트레이드 해 달라는 거 진심이에요?”
새뮤얼은 이제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이국땅에서 자랑스런 NBA선수가 되었지만 부모님의 빈 자리는 아직 어린 새뮤얼에게 너무 컸다. 그런 그를 항상 가족처럼 돌봐주던 앨런이 자신을, 그들의 팀을 떠나려 한다. 그것은 그에게 더 큰 공백이었다.
“올 시즌엔 다 잘될 줄 알았어. 새미, 난 정말 그렇게 믿었는데.”
그건 새뮤얼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플레이오프에 탈락하면서, 새뮤얼은 지난 시즌의 수모를 털어버리기 위해 오프시즌동안 열심히 웨이트도 하고 줄곧 지적받아왔던 미들슛도 많이 연습했다. 칙스 감독과의 충분한 상의 끝에 팀 포지션도 다시 짰고 거기에 익숙해지도록 연습경기도 수없이 치렀다.
시즌 초반 3연승을 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믿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순진한 믿음이었을까. 3연승 뒤의 3연패, 그리고 겨우 5승의 고지에 올랐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연패의 나락이었다. 오늘로서 10연패.
그들은 아직 패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그들은 그들의 껍질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껴안고 있었다. 실력 부족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자신감 부족이었다.
“형이 얼마나 승리를 간절히 원하는지 알지만 형만 힘든 거 아니잖아요. 팀의 리더라면 이럴 때, 이렇게 힘든 순간에 팀을 지켜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할 수 있어요. 아직 시즌 초반이잖아요.”
“…안드레는. 감기 다 나았대.”
“으응… 걘 이제 멀쩡해요. 오늘 같이 오자고 했는데 자긴 가면 형 한대 칠 거 같다고 도저히 못 가겠대서.”
너무나도 익숙한 그의 얼굴이 떠오른 앨런이 피식하고 웃자, 반으로 접힌 눈가에 눈물이 번졌다. 그래, 그만 힘든 게 아니었다. 모두가 힘들었지만 그들은 팀이었다. 서로를 버텨주는. 그리고 그는 그 팀의 리더였다.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야 할 리더가 팀을 두고 떠나는 것은 비겁한 짓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에 그는, 단장의 전화번호가 뭐였던가를 머릿속으로 떠올려보았다.
피스톤스와의 홈경기였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저녁에 벌어지는 경기는 항상 abc에서 이벤트 경기로 방송되곤 했다. 올해도 변함없이 10년째 봐온 낯익은 얼굴들이 해설자석에 앉아있었다. 앨런은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필라델피아의 홈구장인 와코비아 센터에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팬들이 모두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주심의 손이 힘차게 공을 위로 던짐과 동시에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 초반에 끌려가던 필라델피아가 3쿼터 시작 5분만에 피스톤스를 다 따라잡았고 그때부터 숨막힌 승부가 2차 연장까지 계속되었다.
결과는 필라델피아의 짜릿한 역전승. 종료0.3초를 남기고 터진 앨런의 3점슛으로 1점차 역전승을 거둔 그들은 지금 이 순간 그냥 행복했다. 온 구장이 NBA파이널에서 우승이라도 한 듯 떠들썩한 파티분위기였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카메라와 기자들이 순식간에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앨런, 어떻게 된 건가요? 왜 갑자기 트레이드 요청을 철회한거죠?”
“빌리 킹 단장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던가요?”
“마음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뭡니까?”
“오늘 승리는 팀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요?” “마지막 슛을 던질 때 그게 들어갈거라는 확신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세례 속에서 잠시간 생각에 잠겼던 앨런은 휘익 그들을 둘러보고는 두 손바닥을 펴 보였다.
“오늘은 미안하지만 빨리 가봐야해요. 공식인터뷰는 내일로 미루죠.”
“앨런, 앨런.”
“한마디만 해주세요.”
“앨런!”
기자들이 그를 쫒아갔지만 그는 서둘러 롤스로이스에 몸을 숨기고는 사라졌다.
밖에는 조금씩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올해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로군.”
손목을 들어 시계를 흘끗 본 앨런이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차에서 내렸다. 그의 집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리운 그림자였다.
“…앨런 아이버슨.”
“그래. 그게 바로 나지.”
그들은 서로 마주보고 씨익 웃었다.
“오늘이라면 주먹을 아껴도 되겠네요.”
“그럴 줄 알고 이렇게 달려왔잖아.”
“이리와요, 한 번 안아보게.”
둘은 힘껏 껴안았다. 서로의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정말 가는 줄 알았어요. 심장이 덜컥 했다구요.”
“필리를 두고 내가 어딜가.”
앨런은 고개를 들어 안드레의 눈을 바라봤다.
“...라는 생각이 바로 어제 들었지. 하하.”
“아, 형 진짜!”
그래도 그들은 아직 한 팀이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들이 두 번째로 함께 맞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거의 지나가고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fin.
12/20/06에 썼던 글입니다.
앤써의 팀 잔류를 바랐지만 결과는 덴버로의 이적이었군요.